막연히 오려 붙이고 꾸미고 예쁜 글씨쓰고 그림그리는 일이 너무 재밌었고,
그건 내 취미에 지나지 않을 뿐 내가 할일은 공부 라고만 생각했었다.
아침 일찍 학교를 가고 학원을 서울대 입구로 가서 하루종일 또 수업듣고
7층에 있는 자습실에서 공부하고.. 그때도 공부 계획표 짜고 꾸미고 하는 것이
유일하게 쉬는 거였고 내가 하고싶은거 하는 시간이였다.
그때 당시에 학원비가 한달에 100만원이 넘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내가 원하지도 않는 일에 그렇게 큰 투자를 했다는게 분하고 속터진다.
불행중 다행인건 고1 겨울부터 미술학원에 가기 시작했다는 것.
공부말고 다른게 전공일거라고는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내게,
엄마가 먼저 제안해서 노량진에 있는 창조의 아침에 갔던게 생각난다.
처음으로 간 미술학원은 충격 그 자체였다.
어떻게 공부가 아닌 다른걸 전문으로 가르치는 학원이 있을수가 있는지 보면서도 안믿겼다ㅋㅋ
다들 행복한 얼굴로 파레트에 물감을 개고 있었고,
이면지로 정성스럽게 접은 종이 상자에대고 4B 연필을 깎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부터 나는 '미술하는 애'가 되어 있었다.
미술학원에서 상담을 받을때 원장선생님의 수학은 필요없다는 말에 몇년 동안 지긋지긋 시달리던
수학 문제집, 수학의 정석, 수학 연습장, 교과서까지 그 날에 죄다 갖다버렸고 진짜 너무 행복했다.
미술학원 가는게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이였고 제일 행복한 일이였고 제일 우선순위였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단 조급함에 조금이라도 빨리가서 구석자리에 앉아서 열심히 하는데
생각보다 그림이 내 마음대로 안되는게, 남들보다 못하는게 견딜수가 없었다.
그래서 집 책상에 앉아서 에이포 용지 가득 연습했던 드로잉들과 마음대로 안되는 손때문에
몰래 울었던 게 아직도 너무 생생하게 기억난다.
2학년이 되서 만났던 친구들과 아직까지도 너무 존경하는 정연쌤과 나눴던 교감,
그리고 드디어 듣게 된 잘했다는 칭찬들, 몇 안되는 반친구들 사이에서 처음으로 1등했던 기초디자인
시험, 전국 연합대회에서 에이플 받았을때의 그 쾌감 들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곳이
미술학원이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그렇게 2학년이 지나고 분당으로 이사를 와서 다른 환경 다른 친구들과 이런저런 일 겪고,
본격적인 입시를 치룬 후에 결국엔 상상치도 못했던 학교에 진학했다.
작년엔 내 위치가 여기라는 사실을 아무리 노력해도 인정하기가 어려웠고 인정하고싶지도 않았다.
최종목표가 대학진학 이였기 때문이다.
결국 1학년 말에는 시험 한달전쯤부터 다시 학원에 갔고 한예종 시험을 한번더 봤는데
또 한번의 불합격을 봤다. 그때서야 모든게 포기됬다
노력하지 않고서 요행을 바랬다 해도 과언이아니지만,
내가 있는곳이 내 자리고 내위치구나- 포기하듯이 현실을 받아드렸다.
현실을 받아드리니까 진짜 내가하고싶은게 뭔가를 고민할 수 있게 됬고
작년보단 학교도 열심히 나가서 결과적으론 얻은것도 많았다.
결국 학창 시절 최종 목표였던 좋은 학교가기는 이루지 못했지만 결국 좋아하는 걸 따라 여기까지
온게 좋게 말하면 빛을 바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겨우 1학기가 지났는데 교수님들께 하면 할 수 있다는 인정을 받았고,
취미로 시작한 캘리그라피로는 교수님과 따로 일도 하게 됬다.
종강을 한 지금, 작년 겨울부터 계획중에 있던 양말 사업도 찬은이랑 같이 추진해볼계획이다.
평소 좋아하는 브랜드인 아이헤이트먼데이 삭스 대표님께 인스타 다이렉트도 보내보고
너무 반갑고 상냥하게 답장해주시고 메일주소도 알려주셔서 궁금한것들도 여쭤봤는데,
메일에 답장을 보냈다는 사실 자체로도 너무 가슴이 설레고 벅차오른다.
아주 만약에 내가 엄마가 보내는 학원에서 공부를 열심히해서
좋은 학교를 갔다고 해도, 지금만큼 행복하진 않았을꺼다.
입시를 할때도 아무리 몸이 힘들어도 항상 즐거웠었는데 그것도 내가 진짜 하고싶은걸 해서 그랬던거다.
다시 태어나도 난 그림을 그릴거고 디자인을 전공할꺼다.
학교 과제도 힘들었지만 너무 즐거웠고, 취미로 시작했던 캘리도 인정받았단 사실이 너무 기쁘고,
내손에서 보기좋고 예쁜게 만들어 진다는 사실 자체가 벅차오른다.
꼭 내 꿈 속에 있는 회사를 현실화 시켜서 평생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바쁘게 살고싶다
정말 행복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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